요즘 아내가 집 근처 처가에서 지내고 있기에 전 자취생 모드로 살고 있어요.
태어나서 처음으로 냉장고의 냉장실과 냉동실 안쪽까지 살펴보고 있는데 신세계더라고요.
숨겨진 음식들이 엄청 많았고, 그것들을 매일 먹으며 통을 하나씩 비워내는 재미를 느끼고 있어요.
(아내는 채우는 걸 좋아하고, 저는 비우는 걸 좋아하는 성향)
그렇게 냉장고를 조금씩 이해해가면서 식재료에 대한 퍼즐이 맞춰지기 시작한 듯했어요.
며칠 전 냉동실 깊숙한 안쪽에 숨겨진 손질이 다 된 오징어를 발견한 순간 냉장실의 무가 떠오르며 오징어무국이 연상됐어요.
간을 맞추는 재료는 코인 육수, 다진 마늘, 파, 연두, 참치액젓으로 동일할 터이고...
무 먼저 끓이다가 나중에 오징어 넣고 간 맞추면 되겠네...
실제로 해봤더니 생각한 그 맛이 났어요.
뛰어나진 않아도 누가 먹어도 한끼 식사로 나쁘지 않을 수준의 맛...
깜빡하고 오징어무국에 안 넣은 콩나물은 이후 김치콩나물무국으로 만들어봤어요.
김치냉장고에 안 넣고 그냥 냉장고에 꽤 오래 방치한 상한 듯 아닌 듯한 김치가 있길래 그걸 한번 활용해봤어요.
다진 마늘을 2스푼 넣어서 그런지 간은 얼추 맞춰졌는데 배추 자체는 못 먹겠더라고요.
배추만 전부 건져내고 아침에 다시 먹어봤는데 이 정도면 괜찮다고 생각됐어요.
그 김치로 먹을 만한 국을 만들다니 좀 짜릿했네요...
간을 맞추는 재료들이 머리에 세팅돼 있어서 그런지 이제는 다양한 국을 끓일 수 있을 것 같아요.
또 재료 손질하면서 칼질을 계속 하다보니까 뭔가를 자를 때 길이 있는 것 같더라고요.
道.
철학이 느껴지면서 칼질에 대한 흥미도 커지고 있어요.
원래 청소도 제가 많이 했는데 나중에 아내가 집에 오면 요리도 제가 담당할 수 있을 듯해요.
커피에서 요리로 넘어가려는 시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