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食飮

봉지라면과 사람 이야기 (기숙사, 군대)

영삼이 2022. 3. 27. 09:00

유치원 다닐 때인가 강원도 사북에서 잠시 살았었는데 부모님이 맞벌이인 제 또래의 남자형제 2명이 매일 계란볶음밥을 해먹더라고요.

 

초등학교 2학년 때인가 사촌집에 갔더니 제 또래의 남자형제 2명이 가스렌지 앞에서 라면을 아주 능숙하게 끓여먹더라고요.

 

아무 것도 할 줄 모르던 저에겐 큰 충격이었고, 그 후 일주일에 한번은 라면을 끓여먹으며 살아온 것 같아요.

 

 

 

고등학생 때 3년 동안 기숙사 생활을 했어요.

 

기숙사생활의 하이라이트는 야식인데, 돈 없는 학생에겐 당연히 라면이 진리였죠.

 

근데 기숙사에선 음식조리가 불가했기에 라면을 냄비에 끓여먹을 수 없었어요. 부탄가스 사용은 위험했고요.

 

그래서 라면봉지에 정수기의 뜨거운 물을 넣고 몇 분 기다린 뒤 먹는 시스템이 보편화돼 있었고,

 

가격도 저렴하고 면발도 금방 익는 오뚜기 스낵면이 그 당시 모두의 라면이었어요.

 

전 이때 먹은 라면이 살면서 가장 맛있었던 듯해요.

 

(봉지에서는 잘 안 익지만 신라면, 짜파게티는 부의 상징였고요ㅋ)

 

 

 

팔도 비빔면도 면발이 얇아서 봉지라면으로 먹기에 좋았어요.

 

저는 어쩌다 한번 먹었는데, 이거 좋아하는 어떤 선배는 사물함에 참기름 한병 쟁여놓고 비빔면 먹을 때마다 한두방울 섞어먹더라고요.

 

나름 기숙사 먹방의 꿀팁 중 하나였어요ㅋ

 

 

 

군대에 갔더니 기숙사에서랑 똑같이 군인들이 봉지라면을 엄청 먹어대더라고요.

 

대부분이 군대에서 봉지라면을 처음 먹었으나 전 기숙사에서 이미 많이 경험을 했었죠 에헴...

 

근데 이때 집안 경제상황이 많이 안 좋아서 저는 봉지라면을 거의 못 먹었다는... 에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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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물

 

당시에는 관심 갖지 않았는데 지금은 가장 기억에 많이 남는 기숙사 남자선배가 있어요.

 

키 190 정도에 마르고 어깨가 좀 굽은 뱀 같은 얼굴과 몸뚱이의 소유자였어요.

 

물리선생님 말씀으로는 이 형은 수업 내내 딴짓만 하다가 50분 수업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공식을 설명하는 순간만 노트에 필기를 한대요.

 

전혀 수업을 안 듣는 거 같은데 핵심공식 얘기할 때만, 딱 그때만 귀신 같이 받아적었다는...

 

심지어 시험기간이 되면 만화책을 산더미 같이 빌려와서 새벽까지 보고,

 

다음날 아침 시험 시작 전 1~2시간 교과서를 주욱 읽으면 암기과목은 거의 100점...

 

 

 

학교에서는 이 형을 카이스트 보내려고 했는데... 아쉽게도 이 형은 공부에 전혀 관심이 없었고...

 

그 당시 게임 스타크래프트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이 형은 스타에 깊이깊이 빠져들었어요...

 

(새벽에 기숙사 몰래 빠져나가 밤새도록 스타하기 잼~* 어떤 형은 새벽에 담 넘다가 팔이 부러졌는데 그 팔로 스타하고 옴)

 

카이스트를 보내려고 하는데 공부도 안 하고 맨날 스타만 하니까 학교에서는 매우 몽둥이 찜질을 했는데,

 

(이 형이 1진보다 매를 더 많이 맞은 걸로 유명했음ㅋ)

 

아무리 맞아도 눈 하나 깜짝 안 하는 괴력?의 소유자라 학교의 모든 선생님들이 두손두발 다 들었었다는... 허허허 허허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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